1518년(중종 13)에 중국 송나라 유자징(劉子澄)이 편찬한 『소학』을 김전(金詮)·최숙생(崔淑生) 등이 언해하여 간행한 번역본이다.
『소학언해』가 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달리, 10권의 『소학집성(小學集成)』을 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권수가 10권으로 되어 있다.
남곤(南袞)의 발문(跋文)에는 간행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고, 『중종실록』에는 이 책이 1518년 7월에 간행되어 1,300질이 널리 배포되었음이 기록(권34, 13년 7월 기해)되어 있는데, 남곤의 발문에서 “광인유포(廣印流布)하여 아동부녀에게까지 그 내용을 널리 깨닫게 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고 한 것과 부합된다.
10권 10책. 목판본. 을해자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16세기 이후에 복각(復刻)된 중간본만이 전하는데, 그나마 영본(零本:낙질이 많은 책)이다.
이 목판본은 16세기 말엽, 교정청(校正廳)에서 간행한 『소학언해』(1587년)보다 앞선 것으로 추측되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권6·권7·권8은 고려대학교에, 권9는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권10은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홍문각에서 1982년에 권8·권9·권10을 영인하였고, 1984년에 다시 권 6·7을 영인하였다. 그 뒤 2000년 『서지학보』 24집에 권4를 영인하여 출간한 바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번역이 15세기에 주로 불경(佛經)의 언해에서 수립된 직역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의역을 한 점이다. 이것은 본문의 글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표현을 살리려고 한 것이며,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주(注)의 형식으로 보충설명하였다.
이 책이 복각본까지 나온 것을 보면 상당한 환영을 받았던 것 같으나, 강한 직역의 전통 속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선조 때에 『소학언해』를 직역체로 간행하고, 그 「범례(凡例)」에서 『번역소학』을 비판하였다.
대체적으로 16세기 초의 언어 사실을 보여주므로 당대 국어의 구체적인 현실을 볼 수 있다. 즉, ‘ᄃᆞᆫ니며’와 같이 자음동화가 반영된 표기가 나타나고, ‘헏틀오-’, ‘아랫태우’, ‘훗겨집’, ‘호젹’ 등과 같이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표기법에 있어서는 연철 표기를 따르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지만, 분철 표기와 중철 표기도 나타난다. 원래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도 한글로 고쳐 표기하거나 두 글자 이상의 단어들은 일부는 한자로, 일부는 한글로 표기한 예(‘行뎍’, ‘妻子식’)도 보이는데, 이러한 표기도 『번역소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또한 『번역소학』은 의역을 한 것이 도리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고유어가 많이 사용되고 조사나 어미도 다양하며, 인물의 존비 관계에 의한 경어법도 직역본보다 민감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직역본이 대부분인 중세 국어 자료에서 구어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지만, 현존본이 중간본이어서 그 이용에는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