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출신의 서양화가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도쿄(東京)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20대 초반에 조선미술전람회의 특선작가가 되어 주목을 받았으나, 1927년 익사 사고로 요절했다.
1904년 진주의 부호였던 강재순(姜在淳)의 아들로 태어나,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진주지역 형평운동(衡平運動)의 주역인 강상호(姜相鎬)와 아동문학가인 강영호(姜英鎬)가 그의 형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부터 미술에 두각을 보여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아침의 정물(朝の靜物)」로 첫 입선을 했다. 1925년 4월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뒤, 2학년 때인 1926년 도쿄 우에노(上野)미술관에서 열린 중앙미술전에 「정물(靜物)」, 「의자 위의 정물(倚子上の果物)」이 입선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에 유학하면서 조선미술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해 「의자(椅子)」(1926년)와 「작품제9(作品第九)」(1927년)로 연이어 특선을 수상했다. 1927년 7월 23일 진주 물산진열관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전람회를 준비하던 중 진주 남강에서 익사 사고를 당해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강신호가 죽은 뒤, 7월 27일부터 진주공원에서 그의 추도전람회가 열렸고, 8월 19일부터 3일간 서울 천도교회관에서 그의 유작전이 개최되었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그의 유작 「진주풍경(晋州風景)」과 「작품제7(作品第七)」이 출품되기도 했다. 진주 남강변 촉석루 근처에 요절한 작가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새겨놓은 바위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