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준열사기념관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이 1907년 7월 순국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이준열사가 묵었던 네덜란드 헤이그 시내 바겐스트라트 124번지의 융호텔(Hotel De Jong)을 이준아카데미에서 구입하여, 1995년 ‘이준열사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이 건물은 1625년경에 건축된 고 건축물로, 1층은 한국특사 일행이 활동할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3층은 기념관·자료관으로, 세 특사의 생애와 활동 및 평화회의에서의 활약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정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이 1907년 7월 순국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
개설
내용
한국특사들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여 1907년 6월 25일경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준은 1907년 4월 21일 단신으로 사행길에 올라,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합류하였다. 이상설과 이준 양인은 다시 시베리아철도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6월 4일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 도착하였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특사로 진용을 완비한 사행은 베를린을 경유한 뒤 6월 25일 헤이그에 안착하였다. 이준이 국내를 출발한 지 64일만에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헤이그 시내 바겐스트라트 124번지 융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당당히 태극기를 내걸었다. 한국특사 일행이 헤이그에 도착했을 때는 열흘전인 6월 15일부터 평화회의가 개최되어 회의가 진행 중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평화회의 본회의 참석은 봉쇄당하고 말았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외교활동이 어렵게 되면서 특사 가운데 한 사람인 이준이 7월 14일 숙소인 융 호텔에서 순국하였다. 이준의 사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그의 죽음이 ‘분사(憤死)’였다는 점은 이위종과 장지연, 박은식 등이 기록한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특사 가운데 정사였던 이상설은 이준의 유해를 7월 17일 뉴 아이큰다우(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임시 매장하였다.
특징
참고문헌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Ⅷ(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08)
- 『국외 항일운동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Ⅱ(문화관광부·독립기념관·한국근현대사학회 공편, 2002)
- 『이상설전(증보판)』(윤병석, 일조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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