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열사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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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이 1907년 7월 순국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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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이 1907년 7월 순국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
개설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李儁)이 순국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는 헤이그 한국특사인 이준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 시내 바겐스트라트 124번지 융(Hotel De Jong)을 구입하여 ‘이준열사기념관’을 1995년 8월 5일 개관하였다. 이 기념관은 유럽에 하나뿐인 한국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준열사기념관의 설립 목적에 대해 기념관에서 발행한 브로슈어에 의하면, “이준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릴 뿐만 아니라, 민족 후대와 더 나아가서 세계인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 사랑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장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내용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었다. 제2회 만국평화회의는 제정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발의하여 각국에 초청장을 보냄으로써 이루어졌다. 러시아 황제는 1906년 4월에 파나마 등 남미의 몇몇 나라와 함께 대한제국 황제에게도 비밀리에 초청장을 보내왔다. 광무황제는 이 초청장을 받고 구미 열강의 도움으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라 여겨 이상설(李尙卨)을 비롯하여 이준, 이위종(李瑋鍾) 세 사람을 비밀리에 특사로 임명하였다. 이상설이 정사(正使)였고 전 평리원검사 이준, 전 러시아주재공사 이범진의 둘째 아들인 이위종이 부사(副使)였다.

한국특사들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여 1907년 6월 25일경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준은 1907년 4월 21일 단신으로 사행길에 올라,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합류하였다. 이상설과 이준 양인은 다시 시베리아철도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6월 4일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 도착하였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특사로 진용을 완비한 사행은 베를린을 경유한 뒤 6월 25일 헤이그에 안착하였다. 이준이 국내를 출발한 지 64일만에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헤이그 시내 바겐스트라트 124번지 융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당당히 태극기를 내걸었다. 한국특사 일행이 헤이그에 도착했을 때는 열흘전인 6월 15일부터 평화회의가 개최되어 회의가 진행 중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평화회의 본회의 참석은 봉쇄당하고 말았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외교활동이 어렵게 되면서 특사 가운데 한 사람인 이준이 7월 14일 숙소인 융 호텔에서 순국하였다. 이준의 사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그의 죽음이 ‘분사(憤死)’였다는 점은 이위종과 장지연, 박은식 등이 기록한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특사 가운데 정사였던 이상설은 이준의 유해를 7월 17일 뉴 아이큰다우(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임시 매장하였다.

특징

헤이그 한국특사가 투숙한 당시의 융 호텔은 헤이그 시내의 바겐스트라트 거리 124번지 소재 3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1625년경에 건축된 고 건축물로, 현재도 그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이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지대이며, 건물의 전면 출입구에는 ‘이준열사기념관’ 간판이 부착되어 있으며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건물의 2층과 3층 사이에는 영어로 ‘YI JUN PEACE MUSEUM’이 새겨져 있다. 내부는 2∼3층 전체를 기념관·자료관으로 활용 중에 있으며, 세 특사의 생애와 활동 및 평화회의에서의 활약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한국특사 일행이 활동할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참고문헌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Ⅷ(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08)
『국외 항일운동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Ⅱ(문화관광부·독립기념관·한국근현대사학회 공편, 2002)
『이상설전(증보판)』(윤병석, 일조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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