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법주사 괘불도, 통도사 괘불도 등을 그린 승려. 화승.
개설
내용 및 활동사항
두훈의 가장 이른 시기의 불화는 1755년 수화승 휴봉(携鳳) 밑에서 재토(再土), 성총(性聰), 재성(再性)과 고성 건봉사에서 감로왕도를 제작하여 광주 국청사에 봉안한 것이다. 1759년에는 통도사의 「기유년개금탱화단확사시주기(己酉年改金幀畵丹雘事施主記)」에 단청화원(丹靑畵員)으로 기록되어 있고, 1764년에는 장육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와 지장도를 그렸다. 그리고 수화승 성총과 함께 1765년 청도 대적사 신중도를 제작하였다.
두훈은 1766년 법주사 괘불도와 1767년 통도사 괘불도 두 점을 연달아 남겼다. 불화 중 최고의 기량을 필요로 한 괘불을 연속으로 그린 사실로 보아 1760년대에는 두훈이 화승으로서 상당히 인정받았고 휴봉 휘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파를 형성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법주사 괘불에 참여했던 화승은 두훈을 비롯하여 광함(廣瑊), 윤행(允幸) 등 14인이고, 통도사 불화를 제작한 사람은 두훈, 성징(性澄), 열행(悅行) 등 14인이다. 두 작품은 모두 독존형의 괘불로 구성과 색감, 각종 문양의 배치 등이 유사하다. 범자문(梵字紋)으로 구획된 화면에 묘사된 석가모니불은 모란꽃으로 장식한 신광(身光)을 배경으로 하였다. 상의의 둥근 원문, 녹색 소매부의 방형문, 흰 바탕의 칠보문 등의 문양 배치와 조합은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후 1771년 2월에 경상북도 선산 수다사 시왕도와 수다사 사자도를 조성하였다. 오랜 지기인 성총과 함께 작업하였고, 교원(敎願), 윤행(允幸), 정민(定敏) 등 17인과 화폭을 나누어 그렸다. 또한 같은 해인 1771년에 직지사의 불상 개금에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직지사불상개금시주질(直指寺佛像改金施主秩)」(1771)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한국역대서화가사전』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 『한국불화화기집』(홍윤식 편, 가람연구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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