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취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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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개념
노동운동을 위하여 학생운동 출신의 대학 졸업자나 중퇴자들이 학력이나 경력 따위를 감추고 직업을 잡아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취업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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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노동운동을 위하여 학생운동 출신의 대학 졸업자나 중퇴자들이 학력이나 경력 따위를 감추고 직업을 잡아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취업행위.
내용

위장취업은 1970년대에도 존재했으나, 위장취업자가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된 시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이다.

1970년 11월 13일의 전태일 분신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학생운동 세력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민중생존권 투쟁을 비롯한 민중운동 전개에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분신사건 이후 학생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현실에 주목해 ‘민중’ 주체의 운동 이념을 정립해 나갔으며, 빈민지대나 공장지대 등 현장 중심의 운동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5년 2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주동자 대부분이 석방된 이후에는 노동현장에 직접 투신해 활동하는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송운학, 김수길, 김영준, 김영곤, 임규영, 이학영, 신철영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학생운동 내에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 학생운동가 사이에서는 ‘현장론’이 강조되었으며, 1978년 동일방직 사건, 1979년 YH 여공들의 신민당사 점거농성 이후에는 노학연대가 강화되었다. 민청학련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지 않았던 김승호, 김영곤, 문성현 등도 노동현장 진출의 흐름을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후반기 위장취업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서울대 상대를 중퇴하고 1976년 2월 한일공업 보일러공으로 취업한 김문수를 들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노학연대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노학연대가 더욱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학생운동 출신자들이 노동현장에 침투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1980∼1985년경까지 1,000명 이상의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했으며, 이들은 주로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이에 정부는 현장으로 진출한 대학출신자를 ‘위장취업자’로 규정하고, 각 기업체에 생산직 노동자를 채용할 때 철저히 신원조회 할 것을 지시했지만, 위장취업을 원천적으로 막아내지는 못 했다. 위장취업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1990년대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위장취업 문제는 1985년의 대우자동차파업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파업을 주도한 인물 중 송경평, 홍영표, 이용선, 박재석 등 4인이 위장취업자였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대기업에서 발생한 파업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대우자동차파업에 이어 일어난 구로동맹파업도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들의 활동을 기반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구로지역 활동가들은 1984년에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 4개의 노조를 결성했으며, 이들 노조는 1985년 6월 24일부터 6일 동안 전개된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했다.

구로동맹파업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조합주의적 한계 극복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기업별 노조라는 정책적인 틀을 벗어나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1985년 8월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의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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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이원보, 지식마당, 2004)
『한국사회운동사』(조희연, 죽산,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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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개헌 반대, 민청학련투쟁, 반유신 투쟁」(서중석, 『역사비평』3, 1988)
「80년대 노동운동 정예 11인」(임경민, 『월간경향』279, 1988)
「해방 후 한국노동운동의 발자취」(장명국, 『한국노동운동론』1, 미래사, 1985)
집필자
임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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