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탄사(味呑寺)는 황룡사지 남쪽 2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던 신라의 사찰이다. 현재는 평면 방형의 이중기단을 갖춘 삼층석탑 1기만이 남아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 신라시조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조에 미탄사라는 사찰명칭이 나타난다. 즉 사로 육촌 중 네 번째 촌인 취산진지촌을 설명하는 구절에서 언급되는데 다음과 같다. “제4는 취산진지촌이니, 마을 어른은 지백호라 하여 처음 화산에 내려왔다. 이가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일러서 통선부라고 하니 시파 등 동남촌이 여기에 속하였다. 최치원은 즉 본피부 사람이니 지금도 황룡사 남쪽과 미탄사 남쪽에 옛날 집터가 있어 이것이 최후(최치원)의 옛집이라고 하니 아마도 명백한 것 같다(四曰觜山珎支村 長曰智伯虎初降于花山是爲夲彼部崔氏祖 今曰通仙部 柴巴等東南村屬焉 致逺乃夲彼部人也 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 云是崔侯古宅也 殆明矣).”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에는 있었으나, 조선시대 지리지류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미탄사 남쪽에 최치원의 고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탄사지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1980년 삼층석탑 주변이 발굴 조사된 바 있다. 2013년과 2014년도에는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현, 불교문화유산연구소)에서 ‘중요 폐사지 시 · 발굴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사역 일대를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강당 추정 대형 건물지와 종각지, 미탄사 사역의 동북쪽 담장열로 보이는 4기의 석열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유물 중에 ‘미탄’명 평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미탄사였음을 살필 수 있었다. 현재 삼층석탑만 남아있는 미탄사지는 도심 속에 위치하였던 사찰로서 신라 왕경인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