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림사(法林寺)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사찰에 관한 이른 시기의 기록은 조선 전기인 1530년(중종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불우(佛宇)조에는 법림사가 성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하였다. 1608년(선조41) 발간된 안동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도 법림사가 등장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법림사에는 7층 전탑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 하였다고 한다. 전탑의 상륜부는 법흥사의 탑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1598년(선조31)에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갔다는 사항 등이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영가지』의 기록을 참고하면 법림사의 위치는 동부동 오층전탑이 있는 현재의 안동역 일원으로 추정된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은 6.25 전쟁 때 일부 파괴된 것을 196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탑은 건립된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치면서 외관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탑 옆에 당간지주가 남아있어 이 일대에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99년(정조23)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법림사는 부(府)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을 토대로 보면 법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까지 법등을 유지해온 사찰로 임진왜란 직후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