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학사(鳳鶴寺)는 현재 폐사된 사찰로 절터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오층석탑이 남아 있다. 절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유물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근래에 이 절터에서 ‘봉학사’와 ‘지원경진(至元庚辰)’등이 새겨진 명문기와가 발견된 바 있다. ‘지원’은 중국 원나라의 연호이고 ‘경진’은 간지(干支)로 1340년(충혜왕 복위1)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해를 절의 창건 또는 중창된 해로 볼 수 있다. 봉학사지에는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다. 지대석은 4매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일층 탑신석은 2매의 돌로 조성되었다. 각 층의 지붕돌인 옥개석과 초층 탑신을 제외한 나머지 탑신석들은 모두 한 매의 돌로 만들어졌다. 기단부는 없어지고 넓적한 지대석 위에 기단 · 갑석으로 보이는 부재를 얹고 탑신을 쌓았다. 옥개석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각층 탑신의 면석 모퉁이에는 우주(隅柱)가 조각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무너졌던 것을 1967년에 주민들이 복원하였다.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봉학사지에서는 불상도 출토되었는데 현재 인근의 보광사에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은 우견편단(右肩編袒)의 불의를 착용하고 있으며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하체는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항마좌 형태의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다. 이 불상은 굴곡이 배제된 네모진 상체, 띠주름 같은 목의 삼도(三道) 표현과 둔감한 옷 주름선 등에서 불상 조성기법이 도식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세부 조각 형식을 통해 보았을 때 조선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지역의 세도가가 봉학사지에 묘소를 쓰기 위해 이 불상을 땅에 묻었는데 1936년 보광사로 이운해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이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1976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