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년(중종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1799년(정조23)의 『범우고(梵宇攷)』 에는 소악사(小岳寺)가 제천의 대덕산에 있다고 하였다. 현재 사찰은 폐사된 상태이며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절터에는 유물이 흩어져 있고 우물터와 고려시대의 석탑 등이 남아 있다. 소악사지 북쪽의 계곡에는 소악사와 관련된 마애 각자가 있어 조선 후기 사원경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소악사지 삼층석탑은 소악사지 동편, 자연암반을 지대석처럼 다듬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기단부는 두꺼운 2매의 장대석을 맞대어 놓은 상태이다. 장대석의 치석 상태와 돌의 결구 수법을 통해 보았을 때 기단부는 원래의 상태로 볼 수 없다. 탑신부는 3층의 탑신석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탑신석은 2매의 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지붕돌 하단에 만들어진 옥개받침은 전 층이 4단의 받침으로 만들어져 있다. 4단으로 만들어진 굵은 옥개받침과 2매의 돌로 조성된 1층 탑신석, 단층 기단으로 추정되는 기단부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석탑은 고려 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마애 각자는 현재 마모가 진행되고 있어 일부 글자는 판독하기 어렵다. 그 내용은 ‘대덕산소악사불량전답입속치부(大德山小岳寺佛粮田畓入屬置簿)’에 관한 것인데 ‘강희이십사년을축칠월서(康熙二十四年乙丑七月書)’라는 문장으로 끝나고 있어 이 각자가 1685(숙종11)에 새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글의 내용에 등장하는 시주자는 비구 2명과 이석기·방길원·함○○·지득천(대)·김무길 등 7명이다. 마애 각자에는 전답에 관한 구획 상황이 수록되어 있고 또한, 토지 단위로 복(卜)·부(負)·두락(斗落)·일경(日耕)과 같은 용어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경제사 연구에 귀장한 자료로 평가된다. 각자한 시주 목록 등을 토대로 보면 당시 소악사의 사세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