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사(匡山寺)는 창원의 광려산(匡慮山)에 자리한 범어사의 말사이다. 절이 있는 광려산은 그 산세가 중국의 여산(廬山)을 닮았다고 해서 ‘려’ 자를 따오고 그 여산에 살았다는 신선 ‘광유’의 이름인 ‘광’ 자를 합쳐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산사를 중심으로 백련결사가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광산사는 한 때 백련사(白蓮寺)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 광산사는 665년(문무왕 5)에 원효와 중국의 승려 은신이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이후의 연혁도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인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창원도호부 불우(佛宇)조에 절이 이름이 보인다. 당시에는 산의 이름을 두척산(斗尺山)이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인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서도 광산사의 존재가 확인된다. 한편 1852년(철종 3)의 「대웅전창건기」를 보면 신도 박계준(朴啓駿)이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1848년(헌종 14) 가을에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852년에는 대웅전을 중수해 소조 불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대웅전창건기」에는 극락전을 상법당(上法堂), 대웅전을 대법당(大法堂)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대웅전과 극락전이 아래 위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최근에 건립된 극락보전만이 남아있다. 「대웅전창건기」 와 더불어 「극락전창건문」도 전한다. 「극락전창건문」은 1887년(고종 24)에 승려 법전(法典)이 지은 것이다. 이 글에 의하면 광산사는 1870년(고종 7)을 전후해 매우 쇠락하였는데 1887년 봄에 승려 대성(大成)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단청하였다고 한다. 광산사는 6·25 전쟁 중에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1960년에 승려 대순이 대웅전을 다시 건립해 그 법등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