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암사(窟巖寺)는 신라 소지왕 때(479∼500) 도화도인(桃花道人)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이를 고증할만한 자료는 없다. 창건 당시의 사찰 이름은 화장암(花藏庵)이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사찰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최근인 1966년 해인사의 승려 안석범(安石凡)이 폐사되어 있었던 이 사찰을 중창하여 이름을 미타굴(彌陀窟)이라 하였는데, 굴암사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함께 칭해졌다고 한다. 굴암사(窟巖寺)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폭 6m, 높이 2m가량의 바위굴이 법당이며, 굴 입구에는 ‘미타굴’이라는 현판이 있다. 굴 내부에 불단을 꾸미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등을 봉안하였다. 내부는 20여 명이 법회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굴 밖에는 바위를 깎아 조성한 마애 지장보살이 있는데 근래의 것으로 보인다. 요사는 두 동이 있다. 이 사찰에는 소지왕에 얽힌 창건 설화가 전한다. 난치병을 얻은 소지왕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남쪽에서 도화(桃花)를 찾으면 치료될 것이라 하였다. 수소문 끝에 화장산에서 도화라는 이름의 승려를 찾아 설법하게 하니 왕의 병이 3일 만에 나았다. 이에 왕은 승려가 있던 굴에 절을 세웠는데, 이것이 굴암사의 기원이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