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암사(丹岩寺)는 고려 말에 서암(西岩)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신라 하대인 890년(진성여왕 4)에 제작된 「월광사원랑선사탑비(月光寺圓朗禪師塔碑)」를 보면 원랑선사가 성린대사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관으로 임명받아 이곳 단암사에 머물며 수행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비문의 기록에 의거하면 사찰의 창건 연대는 890년 이전으로도 추정 가능하다. 원랑선사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했던 무염(無染)의 제자이다. 조선 중기에는 진묵(震默) 일옥(一玉, 1562∼1633)이 이 사찰에 주석했다고 한다. 사찰 명칭은 초기에는 다남사(多男寺)라고 불렸는데, 언제부터 단암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신중탱화를 봉안하였고, 1935년 승려 박해안(朴海雁)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다. 1941년에는 삼세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종남산의 끝자락에 있는 이 사찰은 미륵전과 대웅전, 그리고 요사 2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편 암벽 동굴에 있는 미륵전에는 협시불이 없는 미륵석불입상이 있다. 이 미륵전은 700년 전에 세워 젔다고 한다. 승려 대명이 2010년에 미륵전을 복구하였다. 완주의 뛰어난 경치를 지칭한 ‘완산승경(完山勝景)’ 중 하나가 ‘단암공영(丹岩空影: 단암사의 고요한 모습)’이다. 단암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많은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암사 석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그 구멍을 넓히는 바람에 물이 나왔다는 미혈기 설화, 왜군이 말에서 내려 기도했다는 하마비 설화, 산신이 전답을 사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산신 설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