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3·1운동(慶州 三一運動)
1919년 3월 13일 경주 도동리교회의 만세 시위운동은 실패로 끝났으나 3월 15일 재점화되었다. 이 사건으로 박내영 목사와 시위 주동자였던 박영조(朴永照), 박문홍, 김학봉(金學鳳) 등에게는 징역 10월, 최창수(崔昌壽)에게는 징역 8월, 손석봉(孫石鳳), 최성렬(崔聖烈)에게는 징역 6월, 김성길(金成吉), 박봉록에게는 징역 5월, 김성필(金晟弼), 김철(金喆)에게는 징역 4월이 각각 선고되었다. 경주의 만세운동은 3월 8일과 10일의 대구 만세 시위운동으로부터 촉발되었으며, 이를 전한 것이 경산 고산면의 교회 목사였다는 점에서 기독 교회 간의 폭넓은 네트워크 및 삼일운동에서 교회의 역할을 알 수 있다.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