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牧溪)나루를 건너 가흥 방면으로 가면 충주에서 장미산(長尾山, 薔薇山) 앞을 지나오는 세 갈래의 길과 만나는데, 이 길에서 앙성(仰城) 쪽으로 들어서서 오른편 강가에 있다.
이 창고에는 곡식 200섬을 실어 나를 수 있는 20척의 배가 있어 경상도의 안동·상주·문경·예천·함창·비안·용궁·봉화·풍기·순흥·영천·예안과 충청도의 영춘·단양·제천·청풍·충주·연풍·괴산·음성·천안·보은·청산·영동·황간 고을의 조세를 운송하는 일을 하였다.
이 곳에서 서울까지 수로로 260리였으며, 수운판관이 최고책임자였다. 이 창고의 크기는 1879년 당시 70여 칸이었으나, 육상교통의 발달로 창고는 폐허가 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