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협조회 ()

근대사
단체
193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정의
193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연원 및 변천

1934년 9월 5일, 일제 헌병 중좌 가토(加藤)의 주선으로 창설되었다. 회장은 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적로군(赤露軍) 장교 경력자로 공산운동을 해 온 김동한(金東漢)이며, 간도 일대의 조선인 좌익 투항자들이다.

본부를 연길(延吉), 지부를 명월구(明月溝)와 왕청(汪淸)에 두었고, 그 하위 조직인 구회(區會)를 팔도구(八道溝)·조양천(朝陽川)·동불사(銅佛寺)·노두구(老頭溝)·이도구(二道溝)·삼도구(三道溝)·대황구(大荒溝)·대두천(大肚川)·이수구(李樹溝)·양수천자(凉水泉子)에 두었다. 구회는 관내 각처에 총반(總班)을 두어 관리했고, 총반 밑에 여러 개의 반을 소속시켰다.

1935년 12월 현재 7,197명의 회원을 가진 이 단체는 “편협한 민족 관념을 양기(揚棄)하고 아시아 민족의 대동단결을 기한다.”는 등의 강령 아래, 공산주의의 박멸을 조직의 사업으로 삼았다.

기능과 역할

회원에게는 첩보와 밀고의 의무가 주어져, 회원이 반(班) 또는 마을 안에 발생한 상황을 반장에게 보고하면, 반장→총반장→구회장→지부장을 거쳐서 본부에 보고되며, 본부는 매월 2회씩 순회하여 하급 조직을 관리, 통제했다.

사업 수행의 방식은 강좌·강연회 등을 통한 간도 교포의 사상 교정, 공산게릴라의 유인 체포, 밀정 투입에 의한 조직 교란, 귀순 공작, 귀순·투항자의 직업지도와, 일본군과 만주군의 보조 병력으로서의 첩보·토벌작전 수행 등이다. 투항자의 직업지도 및 이탈 방지를 위해서 노동안내소·직영공장, 간도협조회 농장 등을 경영하였다.

이 단체는 만주국 간도성(間島省)일대를 무대로 했던 가장 강력한 첩보·밀정단체로서, 일본군의 특무대와 헌병대, 일본영사관과 만주제국협화회 등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이리하여 이 단체는 창립 11개월인 1935년 7월까지 연길현·왕청현·화룡현(和龍縣)일대에서 공산계 지부·소조(小組) 등 190개의 조직을 적발, 파괴하였고, 1,998명의 공산게릴라를 유인하여 체포하였으며, 1,899명을 귀순, 투항시켰다.

참고문헌

『일제침략과 친일파』(임종국, 청사, 1982)
「제1공화국과 친일세력」(임종국, 한길사, 『해방전후사의 인식』 2, 1985)
집필자
임종국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