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석기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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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부분 또는 표면 전체를 갈아 만든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기.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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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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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날 부분 또는 표면 전체를 갈아 만든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기.
개설

‘마제석기(磨製石器)’라고도 한다.

간석기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점성(粘性)이 강한 석재를 골라 격지[剝片] 또는 몸돌[石核]을 쓰고자 하는 용도에 맞게 대략 정형(整形)한 뒤, 타열(打裂)·고타(敲打)·마연(磨硏)의 제작과정을 거쳐 전면을 갈아 광을 낸 것과 필요한 부분만 갈고 나머지 부분은 형태만 갖춘 것이 있다. 후자에는 날만 마연한 것이 많다.

특징

간석기의 제작법에는 찰절법(擦切法)이 있다. 이것은 크고 얇은 판석(板石)에 홈을 그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뒤 석기를 만드는 것이다. 주로 돌칼·돌검·돌살촉 등을 제작하는데 이용되었고 다른 수법에 비해 다소 늦게 출현하였다.

원래 간석기는 신석기시대를 특징짓는 표식적(標式的) 유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간석기 자체는 북서유럽·서남아시아·호주·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후기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에 소량이나마 출현되어 있다.

또한 신석기시대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기후·환경·생업경제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해 간석기의 사용 및 종류가 제한되어 이용되어 왔으며, 사냥과 물고기잡이를 주된 생활로 하였던 환북극문화권에서는 신석기시대에도 중석기시대의 전통인 잔석기[細石器] 및 뗀석기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간석기는 중석기시대 이후 지역에 따라 시기적 차이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간석기와 신석기시대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석기를 갈아 만드는 기술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날을 예리하게 세워야할 필요성에서 발생한 것 같다.

중석기시대에는 날만을 연마한 부분적인 간석기가 많고 전체를 마연한 것도 일부 있다. 신석기시대가 되어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생활이 일반화되면서 간석기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그 이유는 경작지와 거주면적의 확대로 삼림을 개척하기 위한 돌도끼의 사용이 증가됨에 따라 나무를 가공하기 위한 자귀·끌·대패 등의 각종 목공구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용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간석기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속하는 양양 오산리(鰲山里)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곳에서는 낚시바늘·장방형돌칼 등이 출토되었는데, 전체가 잘 마연되어 있는 수법 등으로 보아 마제기술의 개시 시기가 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그 뒤 신석기시대 전기 말부터 중기에 걸친 온천 궁산리, 서울 암사동, 웅기 서포항 등의 유적에서 돌창[石槍]·돌살촉[石鏃]·찔개살·갈판[碾石]·돌도끼[石斧] 등의 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간석기는 날만 마연한 것이 많고 전체적인 마연기법이 아직 거칠지만 무덤에서 출토되는 돌도끼는 전면을 정성스럽게 가공한 것도 보인다. 찰절법에 의한 석기제작도 이 시기에 나타난다. 신석기시대에는 아직 간석기보다는 뗀석기 및 잔석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석기시대 말기를 거쳐 청동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중국 농경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고, 북방 초원지대 청동기문화의 영향도 흡수하게 되었다.

그 후 뗀석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두만강 일대와 압록강 중·상류 유역을 제외한 한국 전역에서 뗀석기가 소멸되고 본격적인 간석기 성행단계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간석기는 신석기시대에 비해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형태도 정형화되었다.

이 시기의 간석기를 종류별로 보면 목공구에 돌도끼·홈자귀·턱자귀·자귀·대팻날·끌 등이 있고, 농경도구로는 괭이·낫·반달돌칼·갈판·공이가 있다.

무기 및 사냥·어로에는 돌살촉·돌창·돌검·그물추 등이, 일상생활용품으로 바늘·가락바퀴·숫돌 등이 있으며, 기타 권위를 상징하는 톱니날도끼[多頭石斧] 및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등도 출토되고 있다.

이들 각종 간석기는 시기·지역별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톱니날도끼는 중부 이남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고, 자귀·대패 등의 목재 가공도구는 주로 중서부지방과 남부지방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이는 농경의 발달과 연관되는 것 같다.

또한 턱자귀는 팽이토기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고, 중부 이남지역에서는 홈자귀와 삼각형 돌칼이 다소 늦은 시기에 출현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발달된 간석기 문화는 비록 그 시작이 일부 중국 및 북방지역에서 들어왔지만, 곧 우리나라 특유의 간석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나아가 이웃 일본에 벼농사와 함께 간석기를 전하여 구주(九州)지방의 야요이 문화(彌生文化)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철기의 보급과 제작이 늘어남에 따라 간석기는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하고 간석기의 구실은 철기로 대체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간석기는 용도에 따라 화강암·섬록암(閃綠岩)·점판암(粘板岩)·혈암(頁岩)·사암(砂岩) 등의 다양한 석재들이 쓰였다. 돌도끼·자귀 등에는 화강암·섬록암 등이, 갈판에는 사암이 주로 이용되었고, 반달돌칼·돌살촉·돌검 등에는 점판암 계통의 석재가 많이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사』 2·3(국사편찬위원회, 1996)
「석기(石器)」(윤덕향, 『한국사론(韓國史論)』 13, 국사편찬위원회, 1983)
「한반도중서부지방(韓半島中西部地方)의 신석기문화(新石器文化)」(한영희, 『한국고고학보(韓國考古學報)』 5, 1978)
『石器の基礎知識』 Ⅲ(鈴木道之助, 東京 柏書房, 1981)
Tools of the Old and New Stone Age(Bordaz,J., Newton Abbot,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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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안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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