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매화타령 ()

고전산문
작품
19세기 후반의, 실전된 판소리.
이칭
이칭
매화가(梅花歌), 골생원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강릉매화타령」은 19세기 후반의 실전된 판소리이다. 사설이 실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매화가라」와 「골ᄉᆡᆼ원전이라」가 보고되면서 사설이 알려졌다. 골생원이 기생 매화에게 빠져 성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하고 놀려주고자, 사람들이 공모하여 골생원에게 망신을 주는 내용이다. 골생원을 비속하게 만들고 놀림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서사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소리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작품에 나타나는 공모와 속임수라는 서사는 조선 후기 세태소설이나 「배비장전」과도 연관되며, 삽입가요에는 「춘향전」의 흔적이 보인다.

정의
19세기 후반의, 실전된 판소리.
사설의 발견과 이본 사항

‘매화가(梅花歌)’라고도 한다. 사설이 실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2년에 김헌선(金憲宣)이 전라북도 전주시의 이영규(李永圭) 소장본 「梅花歌라」를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졌다.

송만재(宋晩載)「관우희(觀優戱)」와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신재효(申在孝)「오섬가(烏贍歌)」, 정노식(鄭魯湜)『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 등에 단편적이지만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매화가라」는 인물 · 사건 · 주제 등은 물론, 부분적인 기록에서도 위 문헌들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고 있어 「강릉매화타령」임이 인정되었다.

이후 2002년에 김석배는 「강릉매화타령」의 다른 사설인 「골ᄉᆡᆼ원젼이라」를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통상 “골생원전”으로 부르는 이 이본은 매화가 골생원을 발가벗겨 경포대로 데려가는 부분부터 낙장된 상태이다. 「골ᄉᆡᆼ원젼이라」와 「매화가라」는 주2과 계통이 서로 다르며, 「골ᄉᆡᆼ원젼이라」가 「매화가라」보다 후대에 나온 이본으로 독자성이 더 강하다. 19세기 후반에 판소리로 불리던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서지사항

「매화가라」의 서지 사항을 살펴보면, 책 크기는 세로가 23.6㎝, 가로가 21.7㎝이고, 겉표지는 없으며 속지 첫 장에 “梅花歌라”라고 적혀 있는데, 뒤에 첨가되어 있는 택일법과 궁합법을 제외하면 총 19장의 분량이다.

표기는 국한문을 혼용하고 있고, 한 줄당 21자 안팎이 필사되어 있으며, 필사자나 필사 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골ᄉᆡᆼ원젼이라」는 칠언칠구의 한시를 엮고 일부를 번역한 22장짜리 제명 미상의 시집의 이면에 덧붙인 종이에 필사되었다. 책 크기는 세로 24.5㎝, 가로 12.2㎝이다. 표지에는 아무 표시가 없지만, 작품 시작 부분에 있는 「골ᄉᆡᆼ원젼이라」는 제명의 기록을 통해 「강릉매화타령」의 이본임을 알 수 있다. 분량은 52면, 200자 원고지 80매 정도로, 「매화가라」의 약 1.4배에 해당한다.

한 면의 행수는 813행, 한 행의 글자수는 1328자로 일정하지 않고, 세 사람의 필체가 섞여 있다. 필사 연대는 알 수 없다.

내용

음란함을 경계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릉 사또가 주5 때, 주4 골생원은 그와 함께 내려가 강릉의 명기 매화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골생원은 서울로 와서 과거를 보라는 본가의 전갈을 받고, 매화와 다시 만날 것을 언약하며 매화와 헤어진다.

서울로 올라온 골생원은 항상 매화를 그리워한다. 골생원이 주13에서도 매화를 생각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바치자, 주7이 골생원의 주8를 던져버린다. 골생원은 매화에게 줄 정표를 사서 다시 강릉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강릉 사또가 골생원을 골탕 먹이기 위해, 길가에 거짓으로 매화의 무덤을 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지시하기를, 골생원에게 매화가 죽었다고 말하도록 한다.

골생원은 대관령을 넘어오다 주1에게 매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처음에 그 소식을 믿지 않았으나, 무덤과 주9를 보고 나서 크게 슬퍼하면서 주10를 진설하고 축문을 읽어 매화를 주11 지극하게 주12.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이어서 골생원은 환쟁이에게 매화의 화상을 그리도록 하는데, 그 화상을 안고 놀다가 또 다시 비웃음을 사게 된다.

한편 이때 사또가 매화를 귀신인 것처럼 꾸며 골생원를 만나게 한다. 골생원과 매화는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다음 날 매화는 골생원에게, 골생원도 매화 자신처럼 혼령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를 속인다. 그리고 골생원의 옷을 모두 벗겨 그를 경포대로 데려간다.

한편 경포대에서 사또는 상여꾼에게 상엿소리를 시킨다. 매화가 골생원에게 그의 상여가 나가는 것이라 알려주자 골생원은 슬퍼한다.

사또가 다시 경포대에 골생원을 위해 음식을 진설하고 애도하면서 풍악을 울리자, 골생원은 음식을 실컷 먹고는 매화와 함께 춤을 춘다. 이때 사또가 담뱃대로 골생원을 지지니, 골생원은 깜짝 놀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주색을 탐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말이 덧붙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골생원의 비속함이다. 생김새가 기괴할 뿐 아니라 기생인 매화와의 성적인 탐닉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는 강릉 사또와 매화, 강릉 백성들이 공모하여, 매화가 죽었다고 골생원을 속인 후 발가벗겨서 경포대로 데려와 망신을 주는 데서 극대화된다. 이처럼 「강릉매화타령」은 오로지 성적인 욕망을 탐하는 비속한 골생원을 통해, 단지 말초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려는 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골생원의 형상은 판소리라는 공연의 양식, 즉 판을 벌여 즐기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변화하는 시대상과 향유층의 정서 · 기호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에 부족했기에, 이 작품은 점차 향유자들에게 인기를 잃고 그 소리도 잃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강릉 사또와 매화, 강릉 백성들이 공모하여 골생원을 속이는 것은 「오유란전」 등과 같은 세태소설과도 연관되며, 같은 판소리계 작품인 「배비장전」에서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골ᄉᆡᆼ원전이라」에 보이는 삽입가요는 「춘향전」의 삽입가요를 가져와 문맥에 맞게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강릉매화타령」은 다양한 작품들을 흡수하여 작품의 의도에 맞게 변형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梅花歌라』(김영규 소장본)
『골ᄉᆡᆼ원전이라』

단행본

정노식, 『조선창극사』(조선일보사, 1940)

논문

김석배, 「'골생원전' 연구」(『고소설연구』 14, 한국고소설학회, 2002)
김헌선, 「「‘강릉매화타령’ 발견의 의의」(『국어국문학』 109, 국어국문학회, 1993)
손동국, 「'강릉매화타령'에 나타난 성적 욕망의 인식 문제」(『한국어와 문화』 11,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화연구소, 2012)
신호림, 「'강릉매화타령'에 나타난 욕망의 성격과 징계의 의미」(『어문론총』 84, 한국문학언어학회, 2020)
윤정안, 「'강릉매화타령'의 귀신 장난의 양상과 의미」(『판소리연구』 51, 판소리학회, 2021)
이문성, 「인물 작명과 골생원의 형상으로 본 '강릉매화타령'(『판소리연구』 30, 판소리학회, 2010)
이혜구, 「송만재의 관우희」(『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주석
주1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풀밭에서 가축에게 풀을 먹이는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베끼거나 고친 것에 대하여 근본이 되는 서류나 문건 따위. 우리말샘

주4

고을 원의 비서 일을 맡아보던 사람. 관제(官制)에는 없는데 사사로이 임용하였다. 우리말샘

주5

지방의 관리가 근무지에 도착하다. 우리말샘

주7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의 시관(試官) 가운데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8

과거 시험에 쓰던 종이. 우리말샘

주9

나무로 만든 비. 선정이나 공덕을 찬양하는 비를 세우려고 할 때에 흔히 먼저 나무에 글을 써서 세운다. 우리말샘

주10

제사에 드는 여러 가지 재료. 우리말샘

주11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다. 우리말샘

주12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에 일정한 소리를 내며 울다. 우리말샘

주13

과거(科擧)를 보는 장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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