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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제도
1895년 4월 이후 궁내부 소속 각 원(院)의 장관급 관직.
정의
1895년 4월 이후 궁내부 소속 각 원(院)의 장관급 관직.
개설

1894년 7월 궁내부가 처음 설치될 때에는 이전의 각 관청을 궁내부 소속으로 개편하는 차원이었으므로, 궁내부 소속관청과 관직은 이전의 명칭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1895년 4월 궁내부 체제가 대폭 개편되면서 장례원(掌禮院)·시종원(侍從院)·규장원(奎章院)·회계원(會計院)·내장원(內藏院)·제용원(濟用院) 등 6개의 원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각 원 아래에 고유 업무를 수행하는 관청들을 부속시켰다.

장례원·시종원·규장원에는 경을 두고, 회계원·내장원·제용원에는 장(長)을 두었다. 이후 궁내부 관제 개정이 여러 차례 있으면서 각 원 명칭의 개칭과 치폐, 새로운 원의 신설 등이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내용 및 변천사항

경의 변천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1895년 11월에 있었던 관제개혁 때 비서원(秘書院)·종정원(宗正院)·귀족원(貴族院)·회계원의 장을 경으로 하였다.

② 1896년 1월 규장원을 규장각으로 개칭하면서 경을 학사(學士)로, 경연원을 홍문관으로 개칭하면서 경을 태학사로, 전의사를 태의원으로 승격시키고 장·부장(副長)을 도제조(都提調 : 議政 또는 궁내부대신이 겸직)·경·소경(小卿)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③ 1899년 8월내장사(內藏司)를 내장원으로 개칭하면서 경을 두었다. ④ 1900년 12월 귀족원이 돈녕원(敦寧院)으로 개편되면서 경이 영사(領事)로 개칭되었다. ⑤ 1904년 5월 어공원(御供院) 신설과 함께 경·소경을 두었으나 7월에 폐지하였다.

⑥ 1905년 3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궁내부 체제가 대폭 개편되는데, 시종원·비서감(秘書監)·예식원(禮式院 : 1900년 12월에 신설되었으나 그 때는 장례원과 별도의 기구였는데, 여기에서는 장례원이 폐지된다. 관직도 예식경·부경·장례경 등을 둔다.)·태의원·경리원(신설 이전의 내장원을 내장사와 경리원의 두 기구로 분리)·주전원 등에 경·부경(副卿)을 두었다.

⑦ 1906년 8월 예식원을 폐지하고 장례원을 다시 설치, 경과 부경을 두었다. ⑧ 1907년 11월 시종원·장례원·내장원(경리원 폐지, 내장사를 개칭)·주전원·제실회계감사원(신설) 등에 경을 두었다.

경은 칙임관으로 소관 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직원을 감독하는 대신급 관리로서, 일제가 황실재산을 침탈하는 과정에서는 특수한 기능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즉 1905년 12월에는 제실재정회의 제도가 마련되었고, 그 의원 중에 경리원경·주전원경·예식원예식경이 포함되었다. 1906년 1월에 신설된 제도국에는 제실제도 정리, 제정을 위해 의정관(議定官)을 두었는데, 1907년 6월부터는 의정관에 장례원경·경리원경·주전원경이 포함되었다. →궁내부

참고문헌

『한국행정제도사(韓國行政制度史)』(정시채, 법문사, 1985)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Ⅰ∼Ⅸ(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0∼1972)
집필자
이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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