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나누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고사인물을 그린 것과 문학작품이나 고전 경서에 등장하는 고사인물을 그린 것이 있다. 세부 화제로는 각종 효자전도(孝子傳圖),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 백낙천비파행도(白樂天琵琶行圖),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왕희지환아도(王羲之換鵝圖), 적벽도(赤壁圖),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죽림칠현도(竹林七賢圖), 육우팽다도(陸羽烹茶圖),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등이 대표적이다.
한대(漢代)부터 충(忠)․효(孝)․예(禮)․의(義) 같은 유교의 교훈을 찾고 옛 일을 숭상하자는 취지에서 그리기 시작하였다가, 송대(宋代)에 이르러 감상화로서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특히 송대부터는 문인 취향과 밀착되어 문인들의 이상적 삶의 본보기와 심의(心意)를 의탁하는 대상으로서, 인물화의 대종을 이루며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북송 회화 사조(北宋繪畵思潮)의 유입과 더불어 고려시대부터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화가 크게 성행하였던 조선시대를 통하여 본격적인 발전을 보였다.
조선 초․중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이곽파 화풍(李郭派畵風 : 북송대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해 형성된 화풍)이나 절파 화풍(浙派畵風 : 명대 절강성(浙江省) 출신의 대진(戴進)에서 시작하여 직업 화가의 계보에 의해 형성된 화풍)의 산수를 배경으로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모티브를 크게 배치하는 소경산수 위주로 많이 그려졌다. 대표작으로 조선 초기 작가 미상의 「적벽도 赤壁圖」, 조선 중기 조세걸(曺世杰)의 「고산방학도 孤山放鶴圖」, 조속(趙涑)의 「금궤도 金櫃圖」가 있다.
조선후기에는 이전 시대 고사 중심의 소경산수에서 보다 넓은 시야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산거도(山居圖) 형태로 많이 그려졌는데, 이는 명대 말기 서재문화(書齋文化)의 도입으로 선비들이 세속에서 벗어나 청렴결백한 삶을 사는 시은자(市隱者)의 생활형태를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형식면에서는 화첩형식의 하나인 시화합벽(詩畵合璧) 형식이 유행하여 문학작품 속의 고사인물이 시서화 형태로 감상되기도 하였다. 화풍은 17세기경부터 수입되었던 『개자원화전』 같은 판화집의 영향을 받아 문인화풍으로 유형화되었고, 소재면에서는 사문탈사(寺門脫蓑) 같은 한국적 고사가 감상용으로 그려지는 진전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심사정(沈師正)의 「파교심매도」, 정선(鄭敾)의 「삼고초려도」, 김홍도(金弘道)의 「서원아집도」 등이 있다.
조선 말기에는 주요 문화향유계층으로 등장한 여항문인(閭巷文人)들의 중국 지향적인 예술 취향을 반영하여 중국 고사 일색으로 그려졌으며, 서양 안료의 사용과 부분적 음영법의 구사 같은 서양화법 수용의 일면도 보여준다. 유숙(劉淑)의 「미불배석도」, 장승업(張承業)의 「왕희지관아도 王羲之觀鵝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