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수의 연시조로 작자가 43세 때 해주 석담(石潭)에 은거할 때 지었다. 『율곡전서(栗谷全書)』를 비롯하여 『악학습령(樂學拾零)』·『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시가(詩歌)』·『악부(樂府)』(서울대학교본)·『청구영언(靑丘永言)』(洪民本·가람본·육당본)·『시조유취(時調類聚)』·『해동가요(海東歌謠)』(一石本·周氏本)·『교주가곡집(校註歌曲集)』 등과 유중교(柳重敎)의 문집인 『성재집(省齋集)』 권49·50·『현가궤범(絃歌軌範)』 부록에도 실려 있다. 『해동가요』에는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고, 『시가』·『악부』·『청구영언』(홍민본)·『해동가요』 및 『금보(琴譜)』의 맨 뒷장에는 오언으로 된 송시열(宋時烈)의 한역시가 덧붙어 있으며, 『현가궤범』에는 가사 옆에 율자보(律字譜)가 병기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작자가 석담에서 고산구곡을 경영하여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은거하면서 주희(朱熹)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栗谷先生年譜)
내용은 서곡(序曲), 제1곡 관암(冠巖), 제2곡 화암(花巖), 제3곡 취병(翠屛), 제4곡 송애(松崖), 제5곡 은병(隱屛), 제6곡 조협(釣峽), 제7곡 풍암(楓巖), 제8곡 금탄(琴灘), 제9곡 문산(文山)의 경치를 두고 각각 그 흥취를 읊은 것이다.
이 작품이 「무이도가」를 본떠 지었다고 하나 서로 내용을 검토하여 보면 단순한 모방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산구곡가」 제1곡과 「무이도가」 제1곡을 놓고볼 때, 「무이도가」가 수채화에 견줄 수 있는 반면에 「고산구곡가」는 담백한 묵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 까닭은 작자 나름의 확고한 시론(詩論)에 바탕을 둔 작품이기 때문이다. 『율곡전서』에 따르면, 그의 시론은 “시는 담백하고 꾸밈이 없어야 한다(主於沖澹蕭散不事繪飾).”는 것이다.
작자와 주희는 한결같이 도학적 문학론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도학의 문구가 전혀 없다. 이는 그들이 문학의 본질, 즉 문학이 지닌 미의식을 긍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작자의 미의식은 주희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자가 주희의 미의식을 그대로 추종하지 않고 독창적인 시경(詩境)을 개척하였음을 말해 준다.
『현가궤범』의 「고산구곡가」는 국한문혼용의 가사 옆에 12율명을 병기한 율자보로서 그 음 높이만 알 수 있을 뿐이며, 그것도 한글로 된 부분의 음은 정확히 어떤 글자에 그 음이 몇 번 붙는지도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
또한, 장단 표시가 없어 어떤 음이 얼마만큼 길고 짧은지 알 수 없는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의 규칙적인 장단으로 되어 있다. 제1곡부터 제3곡까지는 ‘황(黃)·태(太)·고(姑)·유(蕤)·임(林)·응(應)’의 6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4곡부터 제10곡까지는 ‘황·태·고·유·임·남·응’의 7음으로 구성되어 있어 황종각조(黃鐘角調)에 해당된다.
이 악보는 『현가궤범』의 부록인 「시율신격(詩律新格)」에 있는 한시의 율격 가운데 칠언사운율의 배율을 응용하여 국한문혼용체의 율격에 맞게 적당히 배율하여 만들었으며, 각 장의 시작음과 끝음은 항상 황종으로 황종각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형식은 1장부터 10장까지 어느 장도 완전 반복이 없을 정도로 조금씩 달라 장절 형식과 통절 형식의 절충형식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주자학 지식인들이 「무이도가」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이황(李滉)의 경우가 그렇듯이 거의 한시로 차운(次韻)을 한 데 반하여, 작자는 시조의 형태로 변용하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17세기에 와서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한역되기도 하고, ‘고산구곡’이라는 자연을 소재로 한 많은 한시가 창작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17세기 조선 문단에 중요한 작품으로 부각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고산구곡가」는 주자의 「무이도가」의 구곡가 형식을 빌려 노래하면서, 주자의 성리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주자의 천도(天道)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적 경지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고산구곡가」는 주자의 사상과 철학을 수용하되 율곡의 독자적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사상과 겸선(兼善)의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고산구곡가」는 고산구곡담을 배경으로 서사 연과 일곡으로부터 구곡까지 이어지는 10수 연시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사 연을 제외한 일곡으로부터 구곡까지의 각 연의 1행의 “○○곡은 어드메오, ○○에 ∼하다”는 문답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일깨워 시상을 불러일으킴과 함께 개별적인 각 연에 순차성을 부여하고 각 연의 관련성을 탄탄하게 하여 연시조로서의 통일성을 갖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 구조는 율곡 문학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평담(平淡)을 지향하는 것으로 형식면에서의 평담한 미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고산구곡가」는 전통적인 사시가의 시간 구조를 빌어 하루 사시와 일년 사시의 복합 시간 구조를 형성하고 효과적으로 순환성을 획득하고 있다. 즉 서사 연과 오곡을 제외한 여덟 곡이 중장과 종장에서 하루 사시의 시간과 일년 사시의 시간이 교차되며, 순차적으로 드러나면서 우주적 원리에 의한 순환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환의 효과는 서사 연과 오곡의 무규정적 시간 속에 더욱더 증대된다. 즉 서사 연은 10수 연시조의 선두에서, 오곡은 서사 연을 제외한 나머지 연의 중심에서 앞뒤의 각 연에 의미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바탕으로 서사 연에서는 “학주자(學朱子) 하리라”라 하였고,오곡에서는 “강학(講學)과 영월음풍(詠月吟風)하리라”고 읊고 있는데, 다른 여덟 곡의 종결형 어미 ‘하노라’와는 다르게 ‘하리라’라는 미래 원망형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의지적으로 지속적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