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기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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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집(권27) / 곤지기변
남당집(권27) / 곤지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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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한원진(韓元震)이 명나라 나흠순(羅欽順)이 쓴 『곤지기(困知記)』에 대해 비판한 글.
이칭
이칭
나정암곤지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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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한원진(韓元震)이 명나라 나흠순(羅欽順)이 쓴 『곤지기(困知記)』에 대해 비판한 글.
개설

원래의 제목은 ‘나정암곤지기변(羅整庵困知記辨)’으로, 『남당집(南塘集)』 권27 잡저 가운데 실려 있다.

내용

논변의 내용은 인심도심(人心道心)·유정유일(惟精惟一)·이일분수(理一分殊)·이기일물(理氣一物)·이약기강(理弱氣强)·이동기이(理同氣異)·이이기동(理異氣同), 이기(理氣)의 불리불잡(不離不雜) 등이다. 이들 논변 중에서 한원진이 가장 관심을 둔 것은 이기일물을 주장하는 나흠순의 설에 대한 반론이라 하겠다.

인심도심에 대해 나흠순은 도심은 성(性)이라고 하고 인심은 정(情)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성명(性命)에 근원하기 때문에 도(道)라 하고, 형기(形氣)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人)이라 하며, 이들을 발하는 것은 모두 기이기 때문에 심(心)이라 하는 것인데, 이제 도심을 성이라 한다면 이것은 심을 이로 인정하는 것이며, 인심을 정이라고 하면 역시 형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니, 이는 잘못된 견해라고 반박하였다.

유정유일에 대해 나흠순은 유정은 수시로 성찰 공부하는 것으로 인심을 말한 것이고, 유일(惟一)은 평일에 존양 공부하는 것으로 도심을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유정과 유일을 각각 동(動)과 정(靜)에 대응시키려는 것은 온당한 견해가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일분수에 대해서도 나흠순은 이일분수로써 성을 논하면 천명지성(天命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양분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였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이는 본래 하나이지만 나누어져 달라지는 까닭은 이에 붙어 있는 기가 같지 않기 때문인데, 이제 기질지성을 제거하고 분수(分殊)를 말한다는 것은 마치 형체를 떠나서 그림자를 찾는 것과 같으며, 소리도 내지 않고 메아리 소리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분수가 기질지성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모른다면 이것은 이가 스스로 달라지는 것으로 여겨 이일(理一)인 것을 모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와 기에 대해 나흠순은 형이상은 도이고 형이하는 기이나 “기역도, 도역기(器亦道, 道亦器)”라는 정호(程顥)의 말을 근거로 이와 기는 일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정호의 설은 다만 이와 기는 차이가 없는 묘를 밝힌 것이지 진실로 일물이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와 기가 과연 일물이라면 어떻게 이니 기니 하는 명목상의 대립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한원진에 따르면, 이와 기는 혼융하여 선후가 없고 이합이 없으므로 역시 일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물로써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진정 일물인 것이 아닌데, 나흠순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묘만 보았기 때문에 결국 일물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으니 애석하다고 논평하였다.

나흠순은 이는 같으나 기는 다르고, 기는 같으나 이는 다르다는 말은 『역대전(易大傳)』의 형이상하(形而上下)라는 말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주자(朱子)는 이는 약하고 기는 강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태극이 어찌 조화의 추뉴(樞紐)가 될 수 있으며, 품휘(品彙)의 근저가 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였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역대전』의 형이상하라는 말은 다만 도와 기의 구분을 말했을 뿐 이기의 같고 다름에 대한 논의는 아니라 하고, 횡설수설에는 각각 가리키는 것이 있는데 직간(直看)으로써 횡간(橫看)에 맞추고 횡간으로써 직간에 맞추어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원진의 논변에 따르면,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아 한 번은 음하고 한 번은 양하는 것을 도라 하는 것은 이는 같은데 기는 다른 것이요, 개나 소나 사람이나 물의 생(生)은 같은데 성이 다른 것은 기는 같은데 이는 다른 것이다. 또한,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그 기질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기는 강한데 이는 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흠순은 이가 기를 떠나 있지 않는다는 것[理不離乎氣]을 인정하지만, 이가 또한 기에 섞이지 않는다는 것[理亦不雜乎氣]은 모순된 말이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아들에 대한 어버이의 자(慈)와 어버이에 대한 아들의 효는 마치 물은 차고 불은 뜨거운 이치와 같은 것으로, 자의 이는 어버이에게서 분리될 수 없고 효의 이는 아들에게서 분리될 수 없지만, 자의 이가 어버이에 섞이지 않고 효의 이가 아들에게 섞일 수 없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부자는 기이고 자효(慈孝)는 도이다. 도와 기는 사이가 없으니 분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버이가 때로는 자애롭지 않음이 있고, 아들이 때로는 효성스럽지 않음이 있는 것은 기가 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버이가 비록 자애롭지 않을지라도 자애의 이가 없는 것이 아니요, 아들이 비록 효도하지 않을지라도 효도의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가 기에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가 기에 섞이지 않음이 없다면, 이것은 어버이가 자애롭지 않으면 자애의 이도 결국 없는 것이 되며, 아들이 효도하지 않으면 효도의 이도 결국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맹자(孟子)가 성선을 말하면서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고 한 교훈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고 하여, 나흠순의 견해는 이를 해침이 심하다고 비난하였다.

그밖에도 미발(未發)하기 전에 존양은 할 수 있지만 미발하기 전에 중(中)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정이(程頤)의 설은 특정한 질문에 대한 답이지 종신정론(終身定論)은 아니라는 나흠순의 견해에 대해서도 한원진은 부인하고 있다.

참고문헌

『남당집(南塘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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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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