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지방 ()

인문지리
지명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별칭.
이칭
이칭
평안도
정의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별칭.
명칭 유래

‘관서’는 고려 때 관내도(關內道)라고 불리던 서울·경기 지방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는 고려시대에 설치된 철령관이라는 관문의 서쪽지방이라는 데에서 관서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철령관은 함경도로부터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어서 한강유역을 지키는 한편 변방에 대한 통행을 제한하던 곳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을 관동, 서쪽을 관서, 북쪽을 관북이라 하였다. 관서지방의 위치로 보면, 관내도의 서쪽이라는 의미보다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의미가 더 타당하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낭림산맥, 남쪽으로는 대동강과 언진산맥(彦眞山脈)이 경계를 이룬다. 관북 지방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낭림산맥은 800∼1,500m의 높이를 이루며, 맹부산(猛扶山)·소백산(小白山) 등 높이 2,000m 이상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관서지방은 대체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구릉성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안부(鞍部)에 가릉령(可陵嶺)·아득령(牙得嶺)·검산령(劒山嶺) 등이 있어 관북지방과 관서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낭림산맥의 서쪽에 남서 방향으로 강남산맥·적유령산맥·묘향산맥·언진산맥이 뻗어 있으며, 그 사이로 압록강·청천강·대동강이 흘러 서해안에 대규모의 충적평야를 발달시켰다. 이러한 하천들은 수심이 깊어 내륙 지방으로의 수상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기후는 대륙을 향하여 개방되어 있고 토지가 저평(低平)하여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더운 대륙성기후이다. 특히, 쾌청일수·일조일수·증발량이 많고 강수량이 적은 서해안의 대동강 하류에 있는 광량만에는 염전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관서 지방은 서쪽에는 평야, 동쪽에는 산지가 분포하여 잡곡 농업이 이루어지고, 무연탄·금·철 등의 지하자원을 비롯하여 조기와 새우 등의 수산자원, 그리고 수력자원도 풍부한 편이다. 평안북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광산이었던 운산광산(雲山鑛山)이 개발되었으며, 대동강변의 송림에는 대규모 철광산지가 있었다. 평안도는 우리나라에서 무연탄의 최대 산지였다.

형성 및 변천

관서 지방은 개방적 지형과 대륙이 접해 있어 외세 침입을 자주 받아 관서지방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한대(漢代)에는 낙랑과 대방이 있었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고구려의 남하와 더불어 외세는 물러갔으나 그것은 일시적이었고, 통일신라 때에는 그 세력이 패강(浿江: 지금의 대동강) 이남에까지 미쳤다.

북진정책을 내건 고려 때에는 패강 이북의 땅을 수복하고 그곳에 서경(西京, 현재의 평양)을 둠으로써 고구려 시대 통치중심지의 기능을 부활시켰다. 그리하여 995년(고려, 성종 14) 국토를 10도로 편성할 때에 서경이 관할하는 서북 변경의 땅을 패서도(浿西道)라고 하였다. 그 뒤 북계(北界)라고 개칭하고 동계와 함께 양계로 삼았다가 1102년(고려, 숙종 7)에는 서북면(西北面)이라고 칭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계승되고 있다.

평안도라는 이름은 관서지방의 중심도시였던 평양과 안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조선 태종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통치중심지를 평양으로 삼았다. 1896년(건양 1)에 13도의 편성 과정에서 청천강을 경계로 평안도가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로 분할됨으로써 평양의 통치권은 평안남도에 국한되었다. 한편 1952년에는 평안북도에 속하였던 자성·강계 등을 중심으로 자강도(慈江道)가 신설되었다.평양은 북한의 통치중심지로서 1946년에 특별시가 되었으며, 현재는 평양직할시이다.

현황

문화적 특징으로는, 중국 대륙에 대한 개방적인 지형으로 외세 침입을 받기도 하였지만, 서구 사상이 일찍 유입되는 이점도 있었다. 즉, 중국을 통하여 실학사상과 기독교가 우리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관서지방의 선천·정주 등지가 중심이 되었다. 언어생활도 평안남북도에 걸쳐서 고유한 방언권을 형성하고 있다. 가옥 구조도 방언권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즉, 북서 및 관서형으로 통용되는 이 지방의 가옥 구조는 부엌과 결합된 온돌방을 병렬시키고, 그 앞에 난간을 배치하는 것이 특색이다.

관광지로는 관서팔경이 있는데 만포의 세검정(洗劍亭), 의주의 통군정(統軍亭), 선천의 동림폭(東林瀑), 영변의 약산동대(藥山東臺), 안주의 백상루(百祥樓), 성천의 강선루(降仙樓),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강동의 인풍루(仁風樓) 등이 그것이다.

주요 도시로는 신의주·평양·남포·사리원·송림(松林)·마동(馬洞) 등이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평안남도에는 6개 시 19개군에 31개 노동자구가 있으며, 평안북도에는 3개 시 22개 군에 31개 노동자구가 설치되어 있고, 자강도에는 3개 시 15개 군에 23개의 노동자구가 설치되어 있다. 자강도는 인구규모가 양강도 다음으로 작은 도이다. 평양에는 4개 군 19개 구역에 10개의 노동자구가 있었으나, 2011년에 대동강 남쪽의 3개 군과 1개 구역을 황해북도에 이속시킴으로써 면적은 1,300여㎢에 인구는 26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세계화시대의 도시와 국토』(남영우·최재헌·손승호, 법문사, 2011)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및 인구현황』(행정안전부, 2009)
『한국지리』(권혁재, 법문사, 2005)
『신한국지리』(강석오, 대학교재출판사, 1984)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0)
집필자
오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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