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년(성종 14)에 처음 두었으며 문종 때 비서성이 정비되면서 정원 2인의 정9품직으로 되었다. 그 뒤의 변천과정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1356년(공민왕 5)에 나타나는 정8품의 비서랑(秘書郎)이 이전의 교서랑과 비슷한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1362년의 개혁시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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