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문학 ()

국민문학
국민문학
현대문학
문헌
1941년에,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기 위하여 창간한 문학 잡지.
목차
정의
1941년에,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기 위하여 창간한 문학 잡지.
발간 경위

민족항일기 말기의 어용 문학잡지로 최재서(崔載瑞)가 편집과 발행을 함께 맡았고, 발행소는 인문사(人文社)였다. 1945년 2월 통권 제38호까지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인문평론(人文評論)』의 후신 내지 개제(改題)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두 잡지 모두 인문사에서 최재서 주재로 간행되었고, 또한 『인문평론』 자체가 창간 당시부터 전체주의(全體主義) 문학론을 전개하였던 사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일제의 전시총동원체제(戰時總動員體制), 이른바 신체제(新體制) 구축의 일환으로서 조선총독부는 당시 조선 문단 전체를 강압적으로 통합, 어용화하여 황도정신(皇道精神)에 입각하는 국책문학(國策文學)으로 기관지인 『국민문학』을 발행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창간 당시의 발간 지침은 국어판(당시 일본어)을 년 4회(1·4·7·10월호), 언문판(한글)을 년 8회 내도록 정해졌으나, 1942년 5·6월 합병호(2권 4호)부터는 ‘반도황국신민화(半島皇國臣民化)의 최후의 결정’을 위하여 ‘언문’을 완전히 폐지하였다.

그 이전에도 평론 분야는 거의 일본어로 쓰여졌으며, ‘언문판’이라 하여 나온 것은 두세 권뿐인데 거기에도 몇몇 창작만이 우리말로 쓰여져 있을 뿐이었다.

최재서는 국민문학을 “단적으로 말하면 일본 정신에 의해 통일된 동아문화(東亞文化)의 종합을 지반으로 하고, 새롭게 비약하려는 일본 국민의 이상을 시험한 대표적 문학으로서, 금후의 동양을 인도할 수 있는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국민문학』 창간호에서 규정한 바 있다.

평가

『국민문학』은 친일 작가군의 어용 문학잡지에 불과하였다.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 그리고 우리말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책동에 영합하였던 반민족적 문학 행위를 대변한 잡지로서 우리 문학사에 있어 치욕의 장(章)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신일문학론(親日文學論)』(임종국, 평화출판사, 1966)
『轉換期の朝鮮文學』(최재서, 인문사,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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