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義天)의 청원으로 인예태후(仁睿太后)가 창건하였는데, 1089년(선종 6)에 착공하여 1095년에 낙성하였다. 인예태후의 원찰(願刹)이자, 천태종의 종찰(宗刹)이었다.
태후의 영정을 모신 진전(眞殿)이 있어 숙종ㆍ인종ㆍ의종ㆍ고종ㆍ충숙왕 등이 자주 찾았고, 태후의 원으로 조성된 황금 13층 석탑이 1104년(숙종 9)에 이곳에 봉안되었다.
이 탑은 흥왕사(興王寺)의 금탑과 함께 고려왕실의 치탑사례(治塔事例)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그러나 이 절도 몽고족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충선왕은 즉위하면서 옛 가람의 일부를 중창하고 진감국사(眞鑑國師)를 주지로 역임하게 하였으며, 도감(都監)을 두어 무너진 당우를 재건하도록 하였다.
이때의 중창규모가 어떠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전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의하면 금당을 지어 석가여래삼존불을 도금한 뒤 봉안하였다는 간략한 언급이 있고, 『동문선(東文選)』에는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라는 긴 글을 통하여 사리의 영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