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를 이상으로 삼았던 신라 및 고려시대의 왕들은 선왕이나 왕후가 죽으면 그들의 영혼천도를 위한 전각을 선왕의 원찰 안에 짓고, 선왕의 영정이나 위패를 봉안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의 왕들은 개성근처에 그들의 원찰을 두었는데, 이는 불교를 신봉함으로써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꾀하자는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서 고려태조의 국혼단은 봉은사(奉恩寺)와 개국사(開國寺)에 있었다.
개국사는 태조가 원당(願堂)으로 삼았던 절이고, 봉은사는 광종이 태조의 원당으로 세웠던 절로서, 태조의 기일이 되면 역대 왕들이 반드시 이 절에 와서 태조의 명복을 비는 기신도량(忌辰道場)을 열었다.
이 밖에도 8대 현종의 국혼단은 현화사(玄化寺)에 있었고, 11대 문종의 국혼단은 흥왕사(興王寺)에 있었으며, 인예태후(仁睿太后)의 국혼단은 국청사(國淸寺)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