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불화(不華). 권적(權適)의 아들이다. 무신의 난 이후 지방으로 피신하여 유학을 닦고 지방민을 가르치면서 처사 생활을 한 인물.
어사(御使)라는 직위에까지 올라갔으나, 『고려사(高麗史)』 열전에는 이름이 실리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가 없고, 권돈례에 관한 기록은 임춘(林椿)의 문집인 『서하집(西河集)』에 권돈례가 보낸 서한이 실려 있을 뿐이다.
권돈례는 정중부 등에 의해 무신의 난이 발발하자 멀리 원주로 피신하여 처사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관로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유학을 닦으며 청빈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권세가들에게 부화뇌동하는 많은 사람들과 비교되어 백성들로 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