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수지(守之), 호는 장곡(藏谷).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권석충(權錫忠)이고, 아버지는 내시교관 권춘계(權春桂)이며, 어머니는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큰아버지인 집의(執義) 권춘란(權春蘭)에게 입양되었다. 구봉령(具鳳齡)의 문인이다.
1591년(선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에는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권지부정자로 등용되고, 이어서 검열·승정원주서·시강원설서·정언·이조좌랑 등을 두루 역임하고 병으로 사임하였다. 뒤에 다시 홍문관수찬으로 복직하고, 이어서 이조정랑을 거쳐 영덕현령으로 4년간을 재임하면서 큰 치적을 올린 공으로 왕으로부터 옷감을 하사받았다.
이어 곧 홍문관교리로 승진하였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요양한 뒤 사성으로 복직하였다. 그 뒤 풍기군수를 거쳐 동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고, 경주부윤으로 나가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다시 호조참의·좌부승지를 거친 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고향의 지방관을 희망, 죽주부윤(竹州府尹)으로 나갔다.
1623년(인조 1)에 좌승지로 들어왔으나 곧 전주부윤으로 나갔다. 그 뒤 병조참의·충주목사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승진, 지방관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힘썼다. 이듬해에 대사간을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고, 그 뒤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가도(椵島)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죽었다. 저서로는 『장곡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