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정권 말기인 고종 때 지유(指諭)로 있으면서 장군 유정(劉鼎), 지유 민경함(閔景咸) 등과 함께 최우(崔瑀)의 사위인 김약선(金若先)의 아들 김미(金敉)를 최우의 아들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뒤에 김미가 최우의 친아들인 최항(崔沆)과 권력다툼을 하여 최항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자, 앞서 서명하였던 사람들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러나 1258년(고종 45) 최씨정권이 몰락함에 따라 풀려나와 1275년(충렬왕 1) 군부판서 응양군상장군(軍簿判書鷹揚軍上將軍)에 제수되었고, 3년 뒤에는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 홍다구(洪茶丘)의 추천으로 밀직부사에 오르고, 그 이듬해에 동지밀직사 감찰제헌(同知密直事監察提憲)으로 국가기무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