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인(汝仁)
십청(十靑), 귀연(歸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72년(영조 48)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직제학
정의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인(汝仁), 호는 십청(十靑)·귀연(歸淵). 김양겸(金養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범행(金範行)이고, 아버지는 김이규(金履銈)이며, 어머니는 이평(李枰)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4년(정조 18)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1799년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이 되었다.

순조 즉위 후 합리적이고 강직한 성품이 비변사(備邊司)의 인정을 받아 어사(御史)에 합당한 인물로 추천되었으며, 1801년(순조 1) 부제학에 올랐다. 같은 해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문장과 학식이 뛰어남을 알고 경연관으로 천거하였다.

이때 왕은 이언적(李彦迪)이 정부에 건의한 서계십조(書啓十條)의 하나를 대궐의 벽에 걸도록 김근순에게 지시함으로써 정치수행에 교훈을 삼고자 하였다. 같은 해 대사성이 되었고, 1802년 직제학이 되어 깨끗한 문관의 표본이 되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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