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함경북도 웅기 출신. 1940년 고향에서 동라남고등여학교를 졸업한 뒤 동경으로 유학하였다. 일본여자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한 1943년에서 1946년까지 고향의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여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25세 때 평소 원하던 미술수업을 결심하여 1960년 5월에 독일에 유학하여 서독 슈베비슈그뮌트금속예술대학과 뮌헨국립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7년 이후 뒤셀도르프미술대학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서독 칠보 국가자격증과 용접기술 자격증을 획득한 뒤, 1968년 귀국하여 한국디자인포장센터 금속공예담당 상임연구원으로 일하였고, 공예화랑 ‘도라장’ 및 칠보개인공방을 자영하다가 197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연세대학교 가정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3년 칠보예술회를 창립하였고,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전국민예품경진대회에도 참가하였다. 국내 및 해외(서독·하와이)에서 13회에 걸친 개인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전국공예가초대전·한국현대공예대전 등에도 초대 출품하는 등 많은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에는 장신구류·용기류 등 주로 실용성에 치중하였으나 말기에는 색채표현성이 높은 추상적 회화성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서독 오펜바흐미술상(1962)·뮌헨숄현상전(최우수상, 1965·1966)·뮌헨국제미술인협회전(특별상, 1967), 프랑스리모주국제칠보비엔날레(금상, 1973) 및 민속예술상(1975), 동경국제칠보공모전 외국부문 국제상(1983) 등을 수상하였고, 사망하기 며칠 전에 프랑스국제칠보창작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68년 이래 약 7년간에 걸친 칠보와 금속공예의 기술보급과 공예품의 생활화 및 수출에 역점을 둔 실용적 제품개발은 선구적인 것이었으며, 특히 5년간의 ‘도라장’ 경영은 우리나라 공예전문 화랑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리모주국제칠보비엔날레 등 국제전 출품의 성과는 우리 나라의 칠보작품 수준을 국제적으로 인식시킨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현대 칠보공예의 선각자적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작품으로는 「역사의 얼」·「산」·「십장생」·「Long long time ago」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