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성원(聲遠),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찰방 김추(金樞)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 문과에 장원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약관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두류산 묵계동에서 병든 몸을 수양하던 중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도소모장(都召募將)을 삼으니, 고성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진주의 대각사(大覺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