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보(公輔). 호는 묵암(默巖). 아버지는 김학빈(金學彬)이며, 어머니는 영산김씨(永山金氏) 김태기(金泰紀)의 딸이다. 숙부 김덕빈(金德彬)에게 수학하였다.
과장(科場)에 몇 번 나갔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아니하고 일생을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지방 교육을 진작시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리하여 낙암서원(洛巖書院)을 세워 김담수(金聃壽)·김정룡(金廷龍)·김정견(金廷堅) 세 분을 제향하였으며, 유생들이 학문닦는 곳으로 만들었다.
또 상산향약당(商山鄕約堂)을 중건하여 미풍양속을 일으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학문적으로는 이상정(李象靖)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몸소 실천하여 평생을 검소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특히 선비들이 생업에 종사함이 없이 오로지 글만 읽고 벼슬길에만 나아가려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선비들도 반드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김담수의 시문집 『서계일고(西溪逸稿)』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묵암집(默巖集)』 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