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김용성(金用成). 토산김씨(兎山金氏)의 시조.
처음 좌도지시위군(左都知侍衛軍)의 교위(校尉)를 지내고 충렬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함으로써 원나라 세조(世祖)가 진실함을 치하하여 무덕장군 정동행중서성 이문소관(武德將軍征東行中書省理問所官)에 임명하였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임연(林衍)의 난에 호종한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중금지유(中禁指諭)로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군부판서응양군상장군(軍簿判書鷹揚軍上將軍)·자정원부사(資政院副使)를 지냈다.
1298년 밀직부사, 이듬해 서북면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 1300년 지밀직사사 전리판서(知密直司事典理判書), 1302년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를 거쳐 이듬해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다.
공평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일찍이 선군별감(選軍別監)이 되어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중용을 실행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부윤의 아들 김취기(金就起)는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