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이 친히 40만대군으로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고 돌아갈 때, 귀주(龜州)의 별장으로서 중랑장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병을 쳐서 1만여 명을 베었다.
이듬해에 거란의 선봉을 애전(艾田: 평안북도 의주) 지방에서 격파하여 1천여 명을 베었으나, 갑자기 거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당시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였던 양규(楊規)와 함께 전사했다.
그 공으로 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어머니 이씨에게는 한평생 해마다 조 50석을 상으로 주었다. 1019년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졌고, 1024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에 녹권되었다. 또한, 문종이 즉위하자 그 공을 추념하고 표창하여 장려하기 위해 그 형상을 공신각(功臣閣)에 그려 넣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