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천리(千里), 호는 긍원(肯園) 또는 낭곡(浪谷). 홍도(弘道)의 아들. 행적에 대해서는 조희룡(趙熙龍)과 교유관계를 맺었던 사실 이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조희룡은 그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에 가법을 전수한 바 있어 산수와 집과 수목을 잘 그렸는데, 아버지보다 뛰어난 안목도 있다”고 하였다. 산수·화조(花鳥)·풍속 등의 소재를 잘 다루었는데, 작품 구석 구석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버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는데, 가령 그의 <투전도 鬪牋圖>에 보이는 산만한 구성이라든가 번잡한 옷주름 처리 등에서 더욱 역력하게 느낄 수 있다. 산수화에서는 아버지의 영향과 더불어 심사정(沈師正)·최북(崔北)·이인문(李寅文) 등의 화풍도 조금씩 보이나 대체로 섬약한 느낌을 준다.
유작으로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목소림도 古木疎林圖>, 호암미술관 소장의 <송하모정도 松下茅亭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월전취적도 月前吹笛圖>,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추경산수도>, 유복렬(劉復烈) 소장의 <화조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