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년(목종 12) 권신 김치양(金致陽)의 역모계획을 전해들은 목종이 선휘판관 황보유의(皇甫兪義)와 별장 이성언(李成彦)으로 하여금 삼각산 신혈사(神穴寺)에 피신해 있던 태조의 손자 대량군(大良君) 왕순(王詢: 현종)을 세우려 할 때 개성부참군으로 군사 1백명을 거느리고 교외에 나아가 영입해오는 대량군을 도성 안까지 호위하였다.
그리고 1032년(덕종 1)에 1010년(현종 1) 이래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공로를 논하면서 김연경에게도 군기감(軍器監)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