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맹암(孟巖).
1394년에 전서(典書)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그 때 연해를 노략질하는 왜구를 물리치는 계책을 올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실책을 범해 1397년 파직이 되어 옹진(甕津)으로 유배, 수군에 충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04년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로 있을 때에 왜선 1척을 노획하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으로, 태종으로부터 표리(表裏: 겉과 속의 옷감)가 하사되었다. 의성군(義城君)으로 봉작되고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양소(襄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