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김원진(金源珍)이고 1934년에 김원으로 개명했다. 호는 일립(一粒), 본관은 김해(金海). 평양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거쳐, 1933년일본 도쿄의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서양화과로 유학하여 1937년에 졸업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입선을 한 것을 비롯하여, 함흥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1938∼1944년)까지 해마다 출품을 하여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8차례 입선하였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와 서문여자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정착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에 출강하였다. 6·25 때에는 종군화가 단원으로 「38선」 등을 그렸고, 부산에서 유엔한국경제원호처(UNKRA) 미술고문을 지냈다.
195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추수」, 「가을」을 비롯하여, 「동해의 전망」(1957년), 「북악산」(1963년), 「한강」(1968년), 「설악산」(1972년), 「겨울 인수봉」, 「설악의 초설」(1979년) 등 대표적 풍경화들을 출품하였다. 1957년에는 추천작가, 1969년 이후에는 초대작가로 해마다 참여하면서 심사위원도 수차례 역임하였다. 작품 경향은 한국의 자연미를 찬미하며 재현하려고 한 서정적 사실주의로 일관하였다. 1963년부터는 사실주의 화가 단체인 목우회(木友會)에 가담하여,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전국 각지의 현지에서 그린 계절적 자연미와 정취를 그린 향토적 시각의 풍경화를 출품하기도 하였다.
또한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취임하여 197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산업미술대학원장 겸 제2부 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을 지냈다.
1975년 서울시문화상, 1977년 국민교육훈장, 1981년 문화상, 1986년 3·1문화상 예술 부문, 1992년 예술원장 미술 부문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