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중아찬(重阿飡, 혹은 大阿飡)이었다. 714년(성덕왕 13) 11월 20여 인과 더불어 사신으로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조정은 기내7도(畿內七道)의 기병(騎兵) 990인을 차출하여 사신 입조(入朝)를 위한 의식을 훈련하게 하였다.
또한, 같은 달에 영접사를 쓰쿠시(筑紫)에 보내어 신라사신을 맞이하였다. 12월에 김원정 일행은 일본의 수도 나라(奈良)에 도착하자 일본조정은 종6위하(從六位下) 포세조신인(布勢朝臣人), 정7위상(正七位上) 대야조신동인(大野朝臣東人)으로 하여금 기병 170인을 이끌고 삼기(三騎)에서 영접하게 하였다.
715년 1월에는 중문(中門)에서 김원정 일행에게 연회를 베풀고 갖가지 음악을 들려주었다. 3월에 귀국할 때는 대재부(大宰府)에 명하여 비단 5,450근과 배 1척을 주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일본에 대한 사신 파견은 여전히 당나라와 견제상태에 있던 신라가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