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정종(靖宗)과 문종의 장인이다.
1036년(정종 2) 상서우승으로 진봉사(進奉使) 및 고주사(告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옹진에서 배가 부서져 되돌아왔다.
이듬해 상서좌승으로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연호의 반포를 요청하였다. 1040년 지중추원사로 있을 때 딸이 정종의 비[容節德妃]가 됨으로써 국구(國舅)가 되고, 1047년(문종 1)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었다. 1049년 작은딸이 또 문종의 비가 되자,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 판상서형부사를 거쳐 수사도 문하시중이 되었다.
이신석(李申錫)이 급제하였을 때 최충(崔冲)은 이신석이 씨족을 쓰지 않았다고 등용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 김정준(金廷俊)과 함께 씨족 기록 여부는 본인이 아닌 조부와 부친의 잘못이고, 이신석은 좋은 성적으로 급제하였기에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문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정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