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두 ()

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에, 개신교 부흥사로서 큰 업적을 남긴 평양신학교 출신의 개신교 목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4년
사망 연도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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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익두는 일제강점기에, 개신교 부흥사로서 큰 업적을 남긴 평양신학교 출신의 개신교 목사이다.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다. 재령과 신천 등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교역을 감당했으며, 신유를 행하는 부흥사로서 당시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인들에게 큰 위안과 소망을 주었다. 초기 한국 개신교의 확장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해방 후 북한 지역 교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다. 신천교회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던 중 패퇴하던 인민군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에, 개신교 부흥사로서 큰 업적을 남긴 평양신학교 출신의 개신교 목사.
인적사항

김익두는 1874년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아버지는 응선(應善)이고, 어머니는 전익선(田益善)이다. 김익두는 16세 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실패하여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이후 1900년 봄, 미국인 선교사 스왈렌(W. L. Swallen)의 ‘영생’이라는 설교에 감동하여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1901년 1월에 부인 및 어머니와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스왈렌에게 세례를 받았다.

주요 활동

김익두는 황해남도 재령 지역 전도를 위해 헌신하라는 스왈렌의 요청을 받고 교역에 첫 발걸음을 내디뎌 재령교회를 세웠다. 스왈렌으로부터 열정을 인정받은 그는 다시 신천 지역의 개척 전도사로 주4. 그곳에서 전도하면서 조롱도 당하고 돌에 맞기도 하였지만, 김익두는 참고 견디면서 겸손하고 인자한 태도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결국, 그곳에 신천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당도 건축하여 많은 주1를 얻었다.

1910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된 김익두는 이후 신천교회 위임 목사가 되어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목회하였으며, 11명의 목사를 배출하였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사경회에서부터 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김익두의 부흥운동은 192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김익두의 설교 내용은 예수의 십자가와 속죄, 회개에 따른 중생의 체험,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생 주2이었는데, 그의 신비로운 능력과 설교에 많은 청중들이 매료되었다. 그는 1919년 12월 경상북도 달성군의 현풍교회 사경회에서 주6의 능력을 받았으며, 그 뒤 많은 난치병을 고쳤다. 1920년 6월 평양의 연합부흥집회에는 그의 설교를 듣고자 3천 명을 수용하는 장대현교회당이 좁을 정도로 대중이 몰려들었고, 같은 해 10월 서울의 승동교회에서 열린 일곱 교회 연합 집회에는 1만여 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1922년 5월 9일자의 『동아일보』는 김익두의 부흥회를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김익두의 설교가 미혹된 말이며, 기적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러자 황해 주3에서는 김익두가 행한 주7들을 증명하기 위해 이적명증회를 조직하고,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1943년에는 김익두가 신의주 제일교회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일본 경찰이 강제로 연행하여 그에게 신사 참배를 시켰다. 일본 관헌은 이것을 선전 자료로 삼는 한편, 그를 황해도 은율의 어느 과수원에 감금함으로써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광복 후 북한 공산당은 1946년 11월에 어용 기독교 단체인 '조선 기독교 연맹'을 만들고 그를 총회장에 강제로 임명하여 그가 공산당에 협조했다는 오명을 씌우기도 하였다.

김익두는 1950년 10월 14일 신천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유엔군에 쫓겨 후퇴하던 인민군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50여 년 동안 그는 국내와 일본 및 시베리아 지방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776회의 부흥 집회를 인도했고, 150여 곳에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평생에 걸쳐 약 2만 8천 번의 설교를 했으며, 그의 영향력에 의해 약 200명이 목사가 되었고, 그의 치유 사역을 통해 약 1만 명의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광수, 『한국기독교인물사』 (기독교문사, 1974)
김양선, 『한국기독교사연구』 (기독교문사, 1971)
박성겸, 『황해노회100년사』 (은성문화사, 1971)
이호문, 『한국기독교부흥인물사』 (초석출판사, 1978)
주석
주1

믿던 종교를 바꾸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우리말샘

주2

행복과 안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장로교에서, 각 교구의 목사와 장로 대표들이 모이는 모임. 우리말샘

주4

일정한 임무가 주어져 사람이 보내어지다. 우리말샘

주5

신앙 요법의 하나. 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6

신앙 요법의 하나. 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7

기이한 행적.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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