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고종 7)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이듬해에 이조참의, 1880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881년 11월에는 동지정사(冬至正使) 홍종헌(洪鍾軒)을 따라 부사(副使)의 자격으로 청국에 갔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와 복명하였다.
1883년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으며, 1885년 이후 사헌부대사헌,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한 뒤 1894년 예문관제학을 끝으로 관직생활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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