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 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文>에 의하면 지김해부진례성제군사명의장군(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明義將軍)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세력가로서 김해읍에서 35리 가량 서쪽으로 창원의 경계지대에 진례성을 쌓고 그 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병(私兵)의 지휘자로서 인근지방을 지배하였다.
그는 상당히 교양이 높은 가문에서 성장하여 신라왕실에 충성을 다한 김해소경(金海小京)의 관리였거나, 아니면 신라 말기에 새로 대두한 구가야왕족의 후예 신김씨(新金氏)로서, 세력을 떨치다가 907년(효공왕 11) 소충자(蘇忠子)·소율희(蘇律熙) 형제가 등장하기 이전에 몰락하였다. 봉림사의 건립을 후원하여 선종9산의 하나인 봉림산파(鳳林山派)의 후견인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