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김씨(龍宮金氏)의 시조.
시(詩)를 잘 하였다. 인종 때 태자시학(太子侍學)이 되고 과거에 급제하여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가 되었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태자시절의 은혜로 우정언(右正言)이 되었는데, 특히 왕의 총애를 받았다. 1150년 지주사(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이 죽으니, 왕이 명망있는 자를 얻어 대신하고자 하여 정함(鄭諴)의 추천으로 우승선에 임명되었고, 이로부터 금중(禁中)에 출입하여 권세가 대단하였다.
이어 형부낭중 기거주 보문각동제거(刑部郎中起居注寶文閣同提擧)가 되고, 1154년 좌승선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 황보탁(皇甫倬) 등을 급제시켰다. 1156년 태자소보(太子少保)가 되었으며, 친분이 있던 정함과 결탁하여 매관매작을 일삼아 부귀를 누렸다.
죽은 뒤 수충내보동덕공신 이부상서 정당문학 수문전대학사(輸忠內輔同德功臣吏部尙書政堂文學修文殿大學士)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