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우성(又誠). 경상남도 창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의 휘문중학교를 거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 조각을 전공하여 1941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연구과도 수료하였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미술학부가 창설될 때 조소과 교수가 되어 1980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근속하였다.
1949년에 정부 주관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자 추천작가로 「여인좌상」을 출품한 이래, 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주로 그 전람회를 통하여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0년대의 작품들은 여인상·모자상 등을 소재삼은 구상(具象)이면서 표현적인 형상성에 치중된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추상적인 순수조형작업으로 기울다가 그 경향으로 완전히 전신하여, 나무·금속·대리석을 재료로 한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의 작품조각으로 독자적 내면을 실현시켰다. 그 조형적 특질은 구성적이며 공간적이고, 혹은 유기적인 생명감을 가지는 다양성을 이루었다.
1953년「무명 정치수인을 위한 모뉴멘트」를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조각전에 출품하여 수상하였고, 상파울루비엔날레(1965) 등 다른 국제전에도 참가하였다. 1963년에는 「3·1운동 기념상」(서울 파고다공원)을 제작하였으며, 1976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밖에 서울특별시문화위원(1955), 정부문화재보존위원(1959)과 한국미술협회 대표위원(1960), 한국디자인센터 이사장(1968) 등을 역임하였고, 서울시문화상(1960)·국민훈장동백장(1974)·예술원상(1978)을 수상하였다. 주요한 작품으로는 「가족」(1965)·「전설」(195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