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소리를 배운 후, 1955년부터 북한의 국립민족예술극장의 배우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959년에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고, 1962년에는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사망 당시에는 평양음악무용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북한에서는 몇 사람 안되는 전통 창법 계승자이며 서도 소리 보유자였다. 창작곡으로는 「강 건너 마을에 새 노래 들려온다」를 비롯한 여러 편의 창극과 「산천가」·「어부가」·「만경대의 봄」·「모란봉」·「바다의 노래」·「얼룩소야 어서 가자」 등과 같은 수많은 민요를 남겼다.
1990년 평양민족음악단의 단원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90송년 통일전통음악제에 참가하여 「배따라기」·「정방산성가」·「자진난봉가」 등을 불러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도 전통 창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었다. 후진 육성과 북한 민족음악 연구 사업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북한에서는 그를 가리켜 주체적 음악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었던 서도 소리를 보전 및 전승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