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영변 출생. 초등학교 다닐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 현제명(玄濟明)의 권유로 연희전문학교 입학하여 연희전문학교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면서 전국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는 등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쳤다.
대학을 졸업 후 일본 레코드 회사인 빅터사에서 잠시 일을 했고, 경성중앙방송관현악단 악장과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의 주역으로 활동을 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의 총무로 일을 했고, 1947년 고려교향악단과 서울관현악단을 모체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서울교향악단을 창단하여 이듬해 2월에 개최된 제1회 연주회에서 지휘자로 데뷔를 하였다.
이후 한국전쟁 중에는 해군정훈음악대의 지휘자를 역임하였고, 1957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초대지휘자로 부임하여 1961년까지 상임지휘자로 지냈다. 1962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지휘를 공부하였고 1976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 1992년까지 남가주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활동을 하였다.
1995년 10월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개최한 한국교향악 50주년 음악회에 특별초청되어 휠체어에 앉은 채 손으로 지휘,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서울교향악협회를 창설하고 서울교향악단을 창단하는 등, 한국교향악 운동을 주도한 한편, 예그린악단 대표와 예술원회원,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한국음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스웨덴 적십자훈장과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