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홍지(弘之), 호는 인재(認齋). 아버지는 김여정(金汝鼎)이다. 아들이 옹진군수를 지낸 김정후(金靜厚)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별시 주1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1599년 윤4월에 주2에 제수되었는데, 지평 남탁(南晫)의 탄핵을 받아 부임하지 주3 이어 1599년 5월에는 주4가 되었다. 1600년에는 구황책(救荒策)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는 황해도어사 김치(金緻)의 상소로 파직당하였으나, 1602년 모두 모함이었음이 드러나 복직되고 양재찰방(良才察訪)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