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의 제10대 왕, 정종의 아들로, 형제가 모두 죽어 장자와 다를 바 없었으나, 정종 사후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족.
이칭
이칭
왕경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개성(開城)
출생지
개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의 제10대 왕, 정종의 아들로, 형제가 모두 죽어 장자와 다를 바 없었으나, 정종 사후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족.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왕경(王璥). 『고려사(高麗史)』 종실열전(宗室列傳)에 의하면 낙랑후 왕경은 정종과 용의려비(容懿麗妃)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후비열전(后妃列傳)에는 생모 용의려비의 언니로 같은 정종의 왕후가 되는 용신왕후(容信王后)가 1035년(정종 1) 왕자 왕형(王詗)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어 셋째가 된다.

그러나 형과 애상군(哀殤君) 왕방(王昉)은 모두 요절한 듯하므로 낙랑군 왕경은 정종에게 있어 사실상 장자와 같은 셈이다. 그러나 어떤 연고에서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정종의 사후에 즉위하지 못하고 왕위는 정종의 아우인 문종에게 계승되었다.

1052년(문종 6) 10월 개부의동삼사 수태보 겸상서령 상주국 낙랑후 식읍삼천호(開府儀同三司守太保兼尙書令上柱國樂浪侯食邑三千戶)에 봉해지고 수성협리봉덕공신(輸誠恊理奉德功臣)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