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왕경(王璥). 『고려사(高麗史)』 종실열전(宗室列傳)에 의하면 낙랑후 왕경은 정종과 용의려비(容懿麗妃)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후비열전(后妃列傳)에는 생모 용의려비의 언니로 같은 정종의 왕후가 되는 용신왕후(容信王后)가 1035년(정종 1) 왕자 왕형(王詗)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어 셋째가 된다.
그러나 형과 애상군(哀殤君) 왕방(王昉)은 모두 요절한 듯하므로 낙랑군 왕경은 정종에게 있어 사실상 장자와 같은 셈이다. 그러나 어떤 연고에서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정종의 사후에 즉위하지 못하고 왕위는 정종의 아우인 문종에게 계승되었다.
1052년(문종 6) 10월 개부의동삼사 수태보 겸상서령 상주국 낙랑후 식읍삼천호(開府儀同三司守太保兼尙書令上柱國樂浪侯食邑三千戶)에 봉해지고 수성협리봉덕공신(輸誠恊理奉德功臣)호를 받았다.